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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Alcoh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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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술의 세계사
ㆍ패트릭 E. 맥거번 지음·김형근 옮김
ㆍ글항아리 | 512쪽 | 2만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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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자마자 원숭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파나마의 바로콜로라도 숲에서 신나게 과일을 따 먹는 모습이다. 과일은 익을 대로 익어서 알코올 도수가 그럴 듯하게 올랐다. 얼핏 보기에도 원숭이는 잔뜩 취했다. 이 녀석은 약 20분 만에 알코올 함량 12%짜리 와인 두 병에 해당하는 오렌지를 먹어치웠다.

알코올에 대한 탐닉이 영장류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덩치 큰 코끼리는 하루 종일 발효된 과일을 먹다가 ‘2차’가 간절해지면 양조장으로 돌진한다. 달콤하고 열량 높은 알코올에 취해 사람을 공격하고 양조장 건물을 박살낸다. 심지어 작은 새나 벌레도 알코올에 빠진다. 새들은 달콤한 딸기를 폭식하고 횃대에서 추락하고, 곤충학자들은 나무 밑동에 발효 음료를 슬며시 발라 벌레를 꾀어낸다.

물론 술은 인간에게 더욱 특별한 음료다. 이 책에 따르면 술 마시는 인간, 즉 호모 임비벤스(Homo Imbibens)의 출현은 거의 40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속하는) 루시(Lucy)의 뼈 47개를 분석한 결과, 그녀가 나무를 탔을 뿐 아니라 두 발로 걸어다녔다는 것이 드러났다. 루시와 그녀에게서 비롯한 ‘최초의 가족’은 달콤한 과일을 따기 위해 몸을 쭉 펴 나뭇가지 사이를 기어오를 수 있었다. (…) 과일의 틈새가 벌어져 액체가 스며나오면 효모의 공격을 받아 당분은 알코올로 변했고, 그런 과일의 알코올 함량은 5% 이상이다.”


그렇다면 ‘담근 술’은 언제 등장했을까. 저자는 ‘구석기 가설’을 내세운다. “터키 동부나 캅카스 같은 고원지대에 살던 초기 인류는 속을 파낸 나무나 박으로 만든 용기, 가죽으로 만든 포대, 풀로 짠 가방 등에 잘 익은 포도를 담아 가까운 동굴이나 임시 거처로 옮겼다. 용기 바닥에 있는 포도 일부는 껍질이 으깨지고 터져 과즙이 스며나왔다. 그런 포도를 방치해두면 과즙에서 거품이 일거나 심하면 부글부글 끓었다. 포도껍질에 자생하는 효모로 말미암아 과즙은 알코올 함량이 낮은 와인으로 서서히 발효된다. 그 발효 과정이 진정되면 사람들 가운데 용기 있는 누군가가 나서 머뭇거리며 맛을 본다. 희한하게 향이 좋고 풍미가 가득하다. 평온한 느낌을 주고 도처의 위험으로부터 마음을 해방시킨다. 마침내 그는 동참할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액체를 주고받으면서 몇몇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밤이 될 때까지 계속 마셔대면서 그들의 행동은 점차 걷잡을 수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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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패트릭 맥거번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박물관의 생체분자학 연구소 국장이다. 같은 대학 인류학과 겸임교수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술 박사’다. 역사와 자연과학을 버무린 입담으로 술에 관한 갖가지 이야기를 ‘타임’ ‘뉴욕타임스’ ‘네이처’ 등의 매체에 기고해 왔다. 책은 알코올에 대한 고고학적 단서들을 추적하면서 수천년간 이어져온 ‘술의 역사’를 흥미롭게 더듬는다. 이 책의 저자가 ‘술의 인디아나 존스’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전 세계로 퍼져가면서 술도 함께 확산됐다. 책은 세계 곳곳에서 어떻게 ‘술 문화’가 형성되고 번성했는가를 서술한다. 성찬식의 와인, 수메르인들이 술의 신 ‘닌카시’에게 바쳤던 맥주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중국에서는 황허 기슭을 따라 술 문화가 번성했고 시인들은 너도 나도 술을 노래했다. 그 밖에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상류, 비단길과 지중해 등지에서 꽃피웠던 술 문화도 소개된다. 여기에 유명 화가, 음악가, 작가, 철학자들의 알코올 찬미가 곁들여지면서 책의 풍미를 북돋는다.

특히 인류가 식량이 아니라 맥주에 대한 갈망 때문에 농경을 시작했다는 주장은 이색적이고 도발적이다. 저자는 농경의 기원에 대해 “배고픔보다 갈증이 더 큰 계기였다”며 “필수아미노산이 포함된 맥주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죽여 물보다 더 안전한 음료였다. 당시의 양조자는 현대의 약사 같은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술이야말로 집단적 농경생활의 계기였다는 뜻이다. 이렇듯이 술을 빼놓고는 “인류라는 종과 그 문화의 발전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책의 관점이다. ‘인류의 혁신적인 발효음료 제조자들에게 바친다’는 저자의 헌사가 유머러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