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성 ≫ Flavor ≫ 향의 역할

향의 역할 : 기억력을 향상시킨다. 프루스트, Flash memory

- 후각은 가장 원시적(원초적) 감각으로 유전자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 후각은 시각정보에 의존하면서 퇴화중이다
- 감정과 기억력에 관여하고 중요도까지 적어진 것은 아니다
- 우리가 먹는 것은 과거의 추억이다

◆ 향기 나는 상품 더 오래 기억한다

물건을 파는 매장에서 좋은 향기가 나는 것보다 특정 상품에서 좋은 향기가 날 때 사람들은 그 상품에 대한 정보를 더 오래 기억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주변의 향기는 모든 물건에 대해 좋은 인상을 남기지만 특정상품을 기억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미국 미시간대학 아라드나 크리시나 교수팀은 151명을 대상으로 두 가지 실험을 했다. 먼저 연구진은 대상자에게 아무 향기도 나지 않는 것과 흔한 소나무향, 흔하지 않은 차나무 향이 나는 연필을 주고 어떤 것을 더 오래 기억하는지 비교했다. 그 결과 향기 나는 연필을 더 오래 기억했으며 특히 흔하지 않은 차나무 향의 연필을 가장 오래 기억했다. 두 번째로 특정 상품에서 향기가 날 때와 주변에서 향기가 날 때의 효과를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연구진은 향기가 나는 고급화장지와 아무 향기도 나지 않는 고급화장지, 향기가 나는 방과 향기가 나지 않는 방에 실험 참가자를 노출시켰다. 그 결과 상품에서 향기가 날 때 상품과 관계된 정보에 대한 기억이 오래 지속됐다. 크리시나 교수는 “향기는 주변 사물들 중 어떤 상품의 식별력을 높여주는 기능이 있는데 이번 연구로 상품에서 나는 특정 향기가 상품정보에 대한 기억을 높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향기로 강화된 기억력은 적어도 2주 동안은 지속된다”고 밝혔다. 이 연구결과는 ‘소비자연구 저널(Journal of Consumer Research)’에 발표됐으며 미국 온라인 과학뉴스 사이언스데일리, 과학논문 소개사이트 유레칼러트 등이 2009.12.14일 보도했다.

◆ 브랜드 마케팅에도 활용

향기와 감정의 연결은 마케팅에도 활용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다. 아이스크림용 향료는 수십 가지가 있지만, 바닐라향 아이스크림이 매출의 절반을 확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바닐라향은 엄마의 모유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소비자가 무의식적으로 바닐라향 아이스크림에 친근함을 느끼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브랜드 마케팅에도 향기가 필수적이다. 인간은 정보의 80~90%를 시각과 청각을 통해 얻는다. 하지만 LG생활건강 김병현 향료연구소장은 "브랜드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하려면 향기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청각 정보는 단기 기억이지만 후각은 장기 기억이기 때문이다.

라스베이거스의 미라지 호텔은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현대적인 리조트의 표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89년에 지어진 이 호텔의 건설 계획은 6억 3천만 달러나 드는, 위험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호텔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후버 댐을 제치고 네바다 최고의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미라지 호텔이 경이로운 수익을 올리자, 이 호텔의 매력을 모방하는 데 관심이 있는 많은 리조트 개발업자들은 그러한 성공에 의구심을 품고 여러 억측을 내놓았다. 당시 미라지 호텔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 이론 중에서 가장 널리 인정받은 주장은 이 호텔의 냄새가 성공 요인이라는 주장이었다. 환기 시스템을 통해 카지노 시설이 배치된 구역에 의도적으로 특별한 향기를 분사시켰던 것은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스티브 윈(미라지 호텔의 개발자)이 사람들로 하여금 도박을 하게 만드는 방향제를 개발했다고 말했죠.”
마크 펠티어는 회상했다. 펠티어의 회사인 아로마시스는 미라지 호텔이 개장한 직후, 카지노에 분사시킬 방향제를 개발하고 설치했다.
“그 방향제를 선택하던 과정이 기억납니다. 스티브 윈은 호텔의 열대 느낌과 잘 어울리는 향기를 원했어요. 우리는 가장 먼저 아주 이국적이고 세련된 열대 향기를 내놓았는데, 윈은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몇 달 후, 아일린(펠티어의 아내이자 동업자)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스티브는 선탠로션 냄새를 원하는 거예요.’ 아일린의 말이 옳았습니다. 우리는 스티브에게 코코넛버터 향을 조합한 방향제 몇 가지를 선보였습니다. 그러자 스티브는 그 방향제들을 모두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결국 카지노와 로비에서는 거의 20년 동안 코코넛버터 향이 사용됐지요.”
펠티어는 코코넛버터 향이 사람들로 하여금 도박을 즐기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1990년대 초반부터 우리가 제작한 시스템을 설치하고 우리 상품의 향기를 맡으면서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에서 수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도박은 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미라지가 개장한 후 라스베이거스의 몇몇 호텔로부터 전화를 받았던 것은 기억합니다. 다른 호텔에서도 모두 코코넛버터 향을 자기들 카지노에서 사용하고 싶어 했어요. 심지어는 중세 영국을 테마로 하는 엑스칼리버 호텔에서까지도 말이죠.”
향기는 수천 년 전부터 공공장소에서 쓰여왔다. 무어인들은 벽돌 반죽에 유향을 섞어서, 그 향기가 모스크가 완공된 후에도 실내에 오랫동안 남도록 했다. 또 새로 지은 주택의 모델하우스 행사를 할 때면 쿠키를 구워서 그 집이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게 만드는 것은 부동산 업자들이 오래 전부터 써온 방법이다. 하지만 지난 15년간 향기 산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왔고,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유망한 업종이 되었다. 호텔, 스파, 카지노 등에서뿐만 아니라 백화점이나 소매점에도 특화된 향기를 경험할 수 있다. 블루밍데일 백화점에서는 현재 주요 매장마다 차별화된 향기를 사용하고 있다(유아복 매장에서는 베이비파우더 향, 수영복 매장에서는 코코넛 향 등).
실내에 특유의 향기를 사용하는 목적은 눈에 띄는 인테리어 디자인의 목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두 방법은 모두 상업 환경을 보다 쾌적하고 편안한 장소로 꾸며 고객이 그곳에 오래 머물수록 구매 확률이 높아진다. 호텔의 경우에는 환경이 쾌적할수록 고객이 그 호텔을 다시 찾아올 확률이 높다. 그러나 아일린과 펠티어는 그저 기분 좋은 향기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공간에 딱 들어맞는 향기를 원한다. 아일린은 공간이 어떻게 쓰일지, 그 공간을 찾을 고객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등과 같은 몇 가지 요소를 고려해서 향기를 디자인한다. 아일린은 향기와 라이프스타일을 비슷하게 맞추는 데 능숙하다.
“고전적이고 보수적인 호텔이라면, 레몬 향을 조합합니다. 젊고 유행에 민감한 고객이 주로 찾는 호텔이라면, 레몬보다는 레몬 껍질 향기가 더 좋지요. 고전적인 호텔이라면 라벤더 향이 살짝 느껴지는 향기, 최신식 호텔이라면 라반딘(라벤더와 스파이크라벤더의 교배종)을 씁니다. 다시 말해, 보수적인 고객들은 익숙한 향기를 선호하는 반면, 젊고 유행에 민감한 고객들은 거기서 약간 변형된 향기를 선호하지요.”
아일린은 어떤 장소의 시각적인 장식과 향기 성분을 조합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일린이 디자인한 향기는 펠티어가 설계해 특허를 받은 정전기 기화 시스템과 건물의 환기 시스템을 통해 분사된다. 이 시스템은 아일린과 펠티어의 사업을 성공 궤도에 올려놓았다. 현재 아로마시스는 미국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호텔 체인들과 일하고 있다. 펠티어는 말했다.
“고객들이 로비에서 나는 향기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때 가장 뿌듯합니다.”
그러나 아일린과 펠티어는 업소에 사용된 향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원치 않는 일을 강제로 하게 만든다고 억지 주장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1990년대 초, 펠티어는 그런 경우를 자주 겪었다.
“하루는 케이티 쿠릭(미국의 저녁 뉴스의 진행자)이 들이닥치더니 눈부신 조명을 들이대고는 심문하듯 묻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향기를 가지고 호텔과 소매점포의 고객들을 조종했는지 말하라고요. 나는 쿠릭에게 우리는 사람들을 조종한 적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우리의 시스템은 어떤 장소에 장식을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벽에 벽지를 바른다든가, 배경음악을 틀어주는 것처럼요,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향기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것들과 전혀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도 정원의 꽃이나 숲의 나무가 우리에게 우리가 원치 않는 일을 하도록 조종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상업적인 공간을 보다 쾌적한 장소로 만들 뿐입니다.”
그러나 펠티어도 향기가 실제보다 더 신비로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벽지의 색깔보다 더 강력한 장식 요소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 아주 오랜 옛날부터 향기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간주되어왔습니다. 향기는 극히 짧은 순간 스쳐 지나가는 듯하고, 공중에 떠도는 듯합니다. 또한 예측할 수 없죠. 향기는 우리의 감정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 듣는 것들은 대개 이렇지 않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혹시 우리가 느끼는 냄새를 경계해야 하는 걸까? 혹시 냄새가 우리로 하여금 해서는 안 될 결정을 하게 만들 수도 있는 걸까? 냄새에는 시각이나 청각의 효과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이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기분 좋은 향기가 나는 상점(또는 실험실에서 이런 상점을 시뮬레이션 했을 때)에 더 긍정적인 점수를 준다는 것이 마케팅 연구를 통해 밝혀져 있다. 다른 연구들도 기분 좋은 향기가 나는 상점이나 카지노에 고객들이 더 오랜 시간 머물고, 기분 좋은 향기가 나는 카지노의 슬롯머신을 이용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같은 연구에 의하면 보기 좋은 장식이나 듣기 좋은 배경음악도 이런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 이론상으로, 상점에서 나는 좋은 향기는 고객의 생각과 기억에 보다 좋은 감정을 남기는 반면, 불쾌한 냄새는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실내의 향기가 호텔이나 상점의 장식에 독특함을 더해주기는 하지만, 향기가 사람의 의사에 반하는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향기로 세뇌를 해서 억지로 도박을 하게 만들 수도 없으며, 원치 않는 호텔에 강제로 머물게 할 수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게 만들 수도 없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 결과들은 사실 후각이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고 있다. 다만, 우리를 속이는 것은 우리가 느끼는 냄새가 아니라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냄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