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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불편케 하는 복잡성의 덫을 피하라  

신제품 출시에 얽힌 오해와 진실
김지유 IGM 연구원 jykim@igm.or.kr

“제품의 단종(斷種)회의, 정기적으로 진행 하십니까?”
2010년 한국 시가총액 상위 200대 기업 중 98%가 1년 내 신제품 출시 계획을, 75%가 1년 내 사업 다각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대부분 기업들이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다른 질문을 하나를 던졌다. ‘제품의 단종 회의를 정기적으로 진행 하십니까?’ 결과는? 단 1%만 Yes. 전체 기업 중 99%가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지만 기존 제품과 서비스의 정리에는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정리 없는 사업 확장, 과연 이대로 둬도 괜찮을까? (편집자 주)

2010년 2월 24일,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블로그 게시판은 전일 새로 올라온 글 하나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도요타의 고성장과 복잡성의 덫(Toyota’s Hyper Growth and Complexity Trap)’이라는 제목의 이 글은, 지난 해 대규모 리콜로 전 세계를 강타한 도요타 사태를 ‘복잡성’의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있었다. 그간 도요타의 폭발적 성장과 확장 과정에서 제품이나 조직 구조는 조금씩 복잡해져 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이것이 도요타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 요지였다. 이처럼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복잡성의 덫은 서서히 기업의 생존을 위협해 오고 있다.

일상까지 침투해 있는 복잡성, 그 치명적 위험
복잡성(複雜性, Complexity)이란? 사회와 기술이 발전해감에 따라 편리함과 효율성을 추구하지만, 이것이 과도해져 결국에는 사용자조차 이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이른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정렬되어 있지 않고 마구잡이로 얽혀있다’는 것이다. 복잡성의 덫에 빠진 김부장의 일상, 잠깐 살펴볼까? 주말 포함 총 4일간의 짧은 휴가를 다녀온 김부장은 월요일 아침 출근해 컴퓨터를 켠 후 깜짝 놀랐다. 새로 온 메일만 무려 350통! 일일이 메일을 열어 확인하다 보니 어느 새 정오가 훌쩍 넘는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기 무섭게 아내가 김부장을 컴퓨터 앞에 끌어다 앉힌다. 인터넷으로 추석 열차표를 예매하려는데 좀처럼 잘 안 된다나? 그것 하나 혼자 제대로 못해? 하지만 집에 들어온 지 30분이 지났지만 씻지도 못하고 인터넷과 사투를 벌이는 김부장. 무슨 예약 과정이 이리도 복잡한지. 차라리 역에서 직접 예매하는 것이 더 빠르겠다. “스포츠 뉴스 좀 볼까?” 저녁 식사 후 오랜만에 TV앞에 앉은 김부장. TV채널이 이렇게도 많은지. 백여 개가 훌쩍 넘는다. 리모콘도 버튼이 빽빽하다. 문득 세상이 쫓아가기 힘들만큼 복잡해져 간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회사 생활에서부터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복잡성’의 문제. 김부장 개인의 문제일까?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복잡성
지난 해 와튼 비즈니스 스쿨에서 500여 명의 고위임원진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50% 이상의 응답자가 ‘사업상 복잡성으로 인해 회사의 비용 경쟁력 및 리드타임이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고 대답했다. 같은 시기 베인앤컴퍼니에서 1000명 이상 직원을 보유한 미국 기업 200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복잡성으로 인해 투입되는 비용이 제품 원가의 총 10%에서 많게는 25%까지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쓰지 않아도 될 곳에 연간 3조 달러 가량을 쓰고 있는 셈이다.

그 위험성을 잘 알아도 해결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복잡성. 그렇다면, 기업으로 하여금 복잡성의 늪에 빠지게 하는 오해와 진실을 통해 해결책까지 한번에 알아보도록 하자.  

Myth 1. 소비자들은 다양한 제품을 좋아한다?
1853년 설립된 미국의 콘택트렌즈 제조 업체 바슈롬(Bausch&Lomb). 바슈롬은 설립 20년 만에 이미 매출액 2억 3500만 달러를 돌파하며 점유율 40%의 시장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던 1990년대 초반, 새로운 시장으로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든 바슈롬은 모인 자금을 전동 칫솔, 피부 연고, 보청기 등 다양한 신사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런 신사업들과 핵심 사업인 렌즈 사업과의 명확한 연결 고리를 못 찾은 바슈롬은 자원은 자원대로 분산되고, 소비자들에게는 브랜드 이미지 또한 불명확하게 인식됨으로써 서서히 사업이 기울어가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 주당 56달러에 이르렀던 주가는 90년대 중반 33달러 이하로 폭락했고 시장 점유율은 16%까지 떨어져, 핵심 사업이었던 렌즈 사업마저 업계 3위로 밀리게 되었다. 바슈롬처럼 기업이 어느 정도 성장 안정 궤도에 오르게 되면 가장 먼저 고민하게 되는 것이 신제품(또는 서비스)의 출시다. 그러나 이 중 성공을 거두는 것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자꾸 신제품을 개발하고, 더 많은 옵션을 소비자들에게 제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다양성의 유혹’에 흔들리기 때문이다. 고객들에게 최대한 많은 선택의 기회를 주어야 그들이 만족한다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떨까? 너무 많은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 옵션에 진저리 친 경험은 없는가? 혹은 인터넷에서 간편하게 뭔가를 처리하려다 오히려 너무도 복잡한 그 과정 때문에 아예 포기한 적은 없는가? 실제로 2000년 미국 콜롬비아 대학교는 실험을 통해 사람들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선택 기준을 제시하면 선택할 의지 자체를 잃게 된다는 이른바 ‘선택의 과유불급론(The agonies of too much theory)’라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Truth 1. 비전•미션과 합치한 다양성을 선보여라!
일본 최대의 방범•보안 전문업체인 세콤(SECOM)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총 170여 가지에 이른다. 그런데 사업 내용을 살펴보면 방법이나 보안뿐만이 아니라 의료, IT, 건설, 보험, 항공 측량 등 그 분야가 매우 다양하다. ‘문어발식 확장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세콤의 이러한 사업 확장은 기업의 핵심 가치인 ‘보안’이라는 기준 아래 치밀하게 진행된 것이다.

예를 들어 IT 사업으로의 확장은 현실 세계의 보안 사업을 가상 세계로 확대해 점차 늘어가는 사이버 범죄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며, 건설 사업으로의 확장은 보안이 완비된 주택 사업 서비스를 시행함으로써 고객에게 보다 안전함을 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 밖의 구급의료서비스, 화재보험서비스, 보안항공측량서비스 등도 모두 세콤의 핵심 역량인 보안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시행하는 사업 분야이다.

세콤의 설립자 이다 마코토는 지난 1999년 닛케이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창문이 하나 깨지더라도 ‘세콤에게 부탁하면 된다’고 생각되는 회사로 만들고 싶다. 창문 처리부터 보험, 상처의 치료까지 ‘안전’에 관련 되는 분야는 앞으로 모두 우리가 책임지겠다.”는 강하고도 확실한 방향성을 표명한 바 있다.

결과는 어떨까? 세콤은 2009년 매출 7746억 엔, 시가총액 8864억 엔을 기록하며 시장 2위인 알속(Alsok)을 매출에서는 3배, 시가총액으로는 9배 차이를 내며 선도하고 있다. 이렇듯 사업 확장을 할 때에는 우선적으로 그 분야가 우리 기업의 큰 비전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꼭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바슈롬처럼 복잡성의 덫에 빠져 기업의 핵심 사업 분야마저 잃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Myth 2. 트렌드에 맞는 제품이 살아남는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미국의 국가대표 브랜드 할리데이비슨(Harley-Davidson). 유구한 역사에 걸맞게 할리데이비슨은 멀리서 누가 봐도 한 눈에 할리데이비슨의 모터사이클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거대한 몸체에 엔진 2개를 밖으로 드러내 45도 각도로 붙인 V자 엔진과 낮은 안장, 거기에 이른바 만세 핸들이라는 것까지 붙여놓으면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라이더들의 자세는 실로 위풍당당하다. 창업부터 ‘대형 모터사이클 제조 업체’를 표방했던 할리데이비슨은 전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1975년 미국 내 시장 점유율 70%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달성했다.
그런데 1980년대 초 할리데이비슨의 시장 점유율이 10% 이하로 곤두박질 친 적이 있었다. 1960년대 말 미국에 진출한 일본의 혼다(Honda)사가 ‘아이, 여성, 노인 할 것 없이 누구나 탈 수 있는’ 소형 모터사이클을 만들어 싸게 팔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시장 내 굳건한 입지를 가지고 있던 할리데이비슨에게 사실 경쟁사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들 자신이었다.
소형 모터사이클 업체의 등장에 위협을 느낀 할리데이비슨은 갑자기 그들도 소형 모터사이클을 만들기 시작했다. 경쟁사를 따라 하기에 급급한 할리데이비슨의 다양한 소형 모터사이클 모델이 쏟아져 나왔지만, 할리데이비슨 브랜드라는 것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모델 간에도 별 차이가 없어 매장에서 판매하는 직원들도 구분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였다.
결국 할리데이비슨이 1981년 경영혁신을 선언하며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생산하고 있던 소형 모터사이클 라인의 생산을 모두 중단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대형 모터사이클의 종류 또한 줄이고 모델 하나하나가 가진 할리데이비슨 고유의 특징을 최대한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할리데이비슨은 간신히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것이 기업이다. 늘 시장과 고객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 흐름에 한 발 앞서 나가는 것이 정석이라 믿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트렌드에 맞춰 신제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시장은 매우 빠르고 또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를 하나하나 다 맞춰 나가다 보면 우리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는 어떻게 될까? 밖에서 보기에 그 어떤 차별점도 없는 천편일률적인 모습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당신은 ‘현재 우리 기업이 제공하는 모든 제품(및 서비스)’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일목요연하게 그 차별점을 들어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어렵다면 밖에서 우리 기업을 보는 고객의 눈에도 똑같을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복잡성의 덫은 이미 우리 기업 내부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Truth 2. 차별화된 제품만이 살아남는다!

아모레퍼시픽(Amore Pacific)은 60년 역사를 가진 한국의 화장품 제조업체다. 2009년만 해도 1조 7690억 원의 매출을 올림으로써 화장품 업계 독보적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녹차, 생활용품 등도 판매하지만 화장품의 매출 비중이 83%(1조 4743억)라고 하니, 시장 2위인 LG 생활건강의 화장품 매출 비중이 40%에 불과한 것에 비교하면(전체 매출: 1조 5251억/ 화장품 매출: 6198억) 한국 화장품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브랜드를 보면 헤라, 설화수, 리리코스, 라네즈, 아이오페, 마몽드, 이니스프리, 에뛰드, 미래파 등 총 16가지다. 너무 많은 브랜드로 서로 자기 시장을 잠식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그러나 아모레퍼시픽은 모든 신제품을 출시함에 있어 연령대는 10대, 20대, 30대, 40대 이후의 4가지 카테고리, 가격대는 저가, 중저가, 중고가, 고가의 4가지 카테고리에 맞춰 분류해 기존의 다른 제품과 겹치는 경우 아무리 뛰어난 기능을 가지고 있어도 출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고객이 새로 원하는 기능이 있다고 하면 기존의 제품에 이를 추가하면 되는 것이라고 아모레퍼시픽은 이야기 한다. 이를 통해 아모레퍼시픽은 특별한 광고나 마케팅이 없이도 소비자에게 해당 제품이 가지고 있는 기능 및 특성을 깊숙이 각인시켰다.

예를 들어 에뛰드의 경우 10대 여성을 타겟으로 하며 브랜드 이미지는 소녀의 달콤함이다. 로드샵을 통해 10대 소녀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으며, 가격은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중에서 가장 저렴하다. 반면 40대 이후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설화수는 음양오행의 원리를 담은 전통 한방 화장품을 브랜드 이미지로 삼았다. 설화수의 경우 백화점 혹은 전문 유통채널을 통해 독자적으로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가격대는 물론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중 가장 고가다.

아모레퍼시픽의 2009년 매출액 총이익률은 무려 75.3%에 달한다. 화장품 업계가 아닌 어떤 사업 분야와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는 수치다. 아모레퍼시픽이 오랜 연혁에도 불구하고 복잡성의 덫에 빠지지 않고 이런 우수한 성과를 자랑할 수 있는 원동력은 브랜드 간에 뚜렷하게 구별되는 차별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복잡성을 잡아야 지속 성장한다
분명히 사람들의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의 복잡함으로 인해 불편을 느끼게 되는 것들이 일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지를 떠올려 보라. 이처럼 선한 의도로 시작되었다 해도 ‘복잡성’은 결국 사용 주체와 객체를 모두 혼란에 빠트리게 된다. 방심하는 사이 복잡성은 우리 눈 앞에 늘 성큼 다가와있다. 성장에 목말라 하며 주의를 기울이는 만큼 복잡성에도 신경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