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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문장의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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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세상은 몇 권의 책으로 지배되어 왔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근현대까지 지적 정보의 유통은 대부분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이어져 왔다. 따라서 책이라는 의미는 단순하게 정의할 수 없는 거대한 무엇이다. 책이라는 것은 인류의 지적 과정과 저장을 담당하는 외부기억장치라고 할 수 있으며 요즘 같은 사이버 시대에 비유하면 인간의 또다른 신체기관에 다름 아니다. 이는 인류의 단순한 생존을 넘어서서 삶을 어떻게 향유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의 시작이며, 시행착오의 결과물인 동시에 끊임없이 자기 복제와 변이를 통해 새로움을 꿈꾸는 생각의 진화이다.
볼테르의 말 과거의 세상은 몇 권의 책으로 지배되어 왔다!”는 말 속에는 책의 중요성, 즉 다시 말해 사상가들의 생각이 인류문명사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작용하는가에 대한 단적인 증거이며, 개인의 내적 작용의 일회성만이 아닌 생물과 같은 종족 유지와 변이를 통해 연속성을 가져왔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동시에 유기체적인 관계성을 함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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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책은 어떤 모습일까? <와이어드>의 공동 창간자인 케빈 켈리(Kevin Kelly)는 자신의 책 《인에비터블 미래의 정체》에서 이렇게 전망한다.

책은 권위 있는 고착된 걸작으로서 시작했다. 크고 두꺼운 종이책은 안정성의 정수다. 책장에서 움직이지도 변하지도 않은 채, 수천 년 동안이라도 그대로 놓여 있을 것이다. 애서가이자 비평가인 닉 카(Nick Carr)는 책이 고착성을 구현하는 방식을 4가지로 요약한 바 있다. 책이 어떻게 한 자리에 머무는지를 내 나름대로 파악하자면 이렇다.

1. 쪽의 고착성
쪽은 그 상태로 머물러 있다. 펼칠 때마다 같은 모습이다. 그러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언제나 같을 것이라고 확신하고서, 그 쪽을 참조하거나 인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2. 판본의 고착성
책의 어느 사본을 집든 간에, 언제 어디에서 구입하든 간에, 책은 똑같을 것이고(같은 판본이라면), 사람들은 그 안에 적힌 문장을 공유한다. 우리는 똑같은 내용을 보고 있다고 확신하면서 책을 두고 논의를 할 수 있다.

3. 대상의 고착성
적절히 관리를 하면, 종이책은 아주 오래가며(디지털 형태보다 몇 백 년은 더), 책이 오래되어도 적힌 내용은 변하지 않는다.

4. 완결의 고착성
종이책은 완성되고 종결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다 끝났다. 완결되었다. 인쇄물의 매력 중 하나는 거의 맹세처럼 종이에 속박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종이에 의지한다.

이 4가지 안정성은 매우 매력적인 특성이다. 이 특성에 힘입어서 책은 중요한 무엇, 기념비적인 것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종이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쇄물이 디지털 사본에 비해 점점 더 값이 비싸지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새로운 책이 거의 인쇄되지 않는 날이 오리라는 상상을 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전자책의 4가지 유동성
현재 대부분의 책은 전자책으로 발행되고 있다. 오래된 책도 스캐닝을 거쳐 인터넷의 구석구석까지 퍼져서 초전도성을 띈 망에서 자유롭게 흘러다닌다. 앞에서 언급한 4가지 고착성은 전자책에는 없다. 적어도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형태의 전자책에는 없다. 애서가는 이 고착성을 그리워할 테지만, 우리는 전자책이 그것에 맞서는 4가지 유동성을 지닌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1. 쪽의 유동성
쪽은 유동적인 단위다. 내용은 안경알에 띄우는 작은 화면에서부터 벽에 이르기까지 이용 가능한 모든 공간에 맞게 흐를 것이다. 당신이 선호하는 읽는 기기나 읽는 방식에 적응할 수 있다. 쪽은 당신에게 맞춘다.

2. 판본의 유동성
책의 내용을 개인화할 수 있다. 당신의 판본은 당신이 학생이라면 새로운 단어를 설명해줄지 모르며, 당신이 이미 읽었다면 그 시리즈의 이전 책을 요약한 부분을 건너뛸 수도 있다. 나를 위한 맞춤형 '내 책'이 된다.

3. 그릇의 유동성
책은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클라우드에 저장할 수 있으므로, 사실상 '무료'로 무한한 도서관에 저장되고 어느 누구든 언제든 어디에서든 즉시 볼 수 있다.

4. 성장의 유동성
책의 내용은 점점 더 수정되고 갱신될 수 있다. 전자책은 결코 완결되지 않는다는 특성(적어도 이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을 지님으로써 무생물인 돌보다 살아 움직이는 생물을 더 닮아가고, 이 살아있는 유동성은 창작자이자 독자로서의 우리에게 활기를 불어넣는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

 


가상성의 의미

박문호 박사

인류의 문명은 가상성을 추구한 언어의 결과이다. 흑요석 덩어리에서 많은 칼날을 상상하고, 동물의 가죽에서 옷을 상상하고, 숫자로 사물의 개수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여 인간은 자연적 사물을 뇌 속의 가상적 대상물로 만들었다. 또 언어와 문자로 만든 가상의 세계를 통하여 인류는 항상 변화하는 자연환경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은 다른 공간과 다른 시대의 인간 뇌속으로 여행할 수있는 타임머신이다. 책이라는 타임머신으로는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이 체험한 경험 내용에 언제든지 접근할 수 있다. 실재의 자연을 언어를 통해 구성된 가상세계로 구현하여 제한 없이 탐험하고 재구성하여 다시 문자로 표출하는 것이다.
독서를 통해 우리는 무한한 가상의 세계를 만난다. 가상의 세계는 결코 허망한 존재가 아니라 무한 생성의 세계이며, 우리의 문화가 자연에서 생존가능성을 높여준 것은 실제 자연 환경을 뇌 속에서 인과적으로 연계된 가상의 이미지로 변환시켜 준 결과다. 결국 인과적 사고의 결과로 예측능력이 생겼으며 자연에서 생존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그러한 언어의 상징으로 포착된 세계상을 만나는 행위가 바로 독서다. 상징으로 표현된 세계가 인지신경망 속에서 가상의 세계를 구성하고 우리는 뇌가 만든 이러한 가상의 설계도에 따라 자연을 조작한다. 책은 문자언어의 가상적 속성으로 공간구속에서 벗어나 무한히 변화가능한 자유도를 획득했고, 과거를 지금 현재에 드러내는 속성으로 영속성을 얻게 된다.

템플 그랜딘은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나는 신문에서 뉴욕도서관 직원 한 사람이 지구상에서 영원불멸성이 존재하는 곳은 도서관뿐이라고 말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도서관은 인류의 축적된 기억이 존재하는 곳이다. 나는 이말을 현판에 적어 책상 위에 걸어 놓았다. 그 말 덕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국 박사학위를 따낼 수 있었다. 위대한 사상가들은 글을 후대에 남김으로써 불멸성을 얻었다. 불멸성이란 사람의 사고와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말하는 것이다.

생각은 문자로 옮겨져 책이 된 후에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서 영원성을 획득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뇌패턴에 나의 뇌 패턴을 결합하는 과정이다. 독서는 지난 수 천년 간 형성된 명료한 논리의 패턴, 숭고한 감성의 패턴에 자신의 신경회로가 감전되는 행위이다.

글쓰기를 통해서 의식활동이 뇌 외부에서 편집과 집적이 가능해졌다. 책이야말로 연결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신경세포들 사이의 접속, 그 무수한 시냅스 춤의 기록이다. 문자라는 상징 기호의 형태로 영원성을 획득한 시냅스 춤이 타인의 뇌 시스템에 동조될 때 새로운 생각의 흐름이 생기고, 전두엽의 판단 작용을 거쳐 그 일부만이 글로 정확하게 표현된다. 잘 짜여진 글은 스스로 생명을 획득하여 영원성을 갖게 된다. 영원성과 편집성을 갖게 된 글은 인간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큰 기여를 하였다. 헌법으로 표현된 문장은 그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것이 바로 글의 힘이다.
사람들은 말을 자연스럽게 한다. 말하기 보다 더 빈번하고 자연스러운 작용은 또 무엇이 있을까? 바로 생각하기다. 생각하기는 혼자 속으로 말하기이다. 생각은 ‘생각나기’와 ‘생각하기’가있다. 생각나기는 소음처럼 그냥 흘러 나온다. 생각나기는 자발적으로 생성되어 가는 방향을 짐작하기 어렵다. 그 긴 행렬은 생각이 생각을 불러와서 기억의 바다를 헤집고 다닌다. 다른 감각입력에 의해 주의가 분산될 때까지 기억을 무작위로 연결해서 생각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른다. 반면 생각하기는 의도적인 기억탐색의 과정이다. 회상은 적절한 기억을 찾아가는 생각하기 과정이다. 연상작용은 생각하기에 의해 촉발된 이미지들의 연쇄적 흐름이다. 가상공간에서 무한한 자유도가 보장되므로 생각의 자발성과 분산성은 무제한적이다.

말하기는 생각하기의 부분집합이다.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을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말을 잘하는 것은 잘 생각하는 능력의 일부이다.

‘글쓰기’는 인간의 의식진화에서 최근에 획득된 능력이다. 생각의 집약된 형태가 말이고 말의 집약된 형태가 글이다. 100번의 생각이 10번의 말하기로 축약되고 아마 한 번의 글쓰기로 응축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글쓰기가 거의 모든 사람에게 힘든 이유일 것이다. 말하기는 주로 자신의 감정적 상태를 표현하는 자동적 반응에 가깝고 글쓰기는 기억된 사건에서 의미를 논리적으로 연결하는 추론능력이다. 생각하기, 말하기, 글쓰기의 상호관계를 면밀히 관찰해 보면 그 바탕이 궁금해진다. 이 세가지 능력은 모두가 몸 동작이 정교화 되어서 가능해진 진화된 운동성에서 생겨났다. 몸이 피곤하여 집중력이 저하된 상태에서는 생각은 희미하고 애매한 상태로 간헐적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말은 어렵고 글쓰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 세 가지는 몸 상태의 종속변수이다. 정치한 생각과 일관된 논리가 형성된 후에야 글이 가능해진다. 결국 좋은 글은 면밀한 관찰력과 다양한 느낌을 갖는 기억이 필요하다.

요약하면 글쓰기는 관찰 훈련과 독서를 통한 기억이 바탕이 된다. 습관화된 세밀한 관찰과 광범위한 독서는 논리적으로 확장된 기억을 형성한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재구성된 기억이 바로 글이 된다.

몸의 운동성을 생성하는 신경계의 진화는 인간에 이르러 생각과 언어능력을 산출했고, 그 언어의 가상성으로 인간문화는 다양성과 환경적응능력을 획득했다. 문자는 개개인 뇌 속의 가상세계를 서로 소통하고 통합해 주었다. 문자를 통해 인간은 비로소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현실에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독서인은 가상공간에서 모든 인류의 기억을 재료로 새로운 세계상을 구성하는 창조자이다

 


페이스북       방명록      수정 2017-06-13 / 등록 2011-01-30 / 조회 : 10484 (301)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불량지식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  2009.12  최낙언